“이건 처음 보는 캐릭터네.”
질리도록 보아온 캐릭터 생성창.
난 모니터에 시선을 고정했다.
그리고는 새로 생긴 캐릭터 위에 마우스를 얹었다.
【암상인(히든)】
특별 조건을 달성해야만 해금되는 히든 클래스였고, 15년째 게임을 즐기고 있는 나조차도 들어본 적 없는 생소한 직업이었다.
이렇듯 ARPG 게임《유니버스》에는 수도 없이 많은 직업이 존재했다.
전사 같은 식상한 직업부터.
네크로맨서, 마검사, 메카닉 같은 독창적인 직업까지.
여기에 캐릭터 포인트만 충분히 쌓으면 세계관 내에 존재하는 NPC를 선택하여 플레이하는 것도 가능했다.
“흐음, 흥미롭긴 한데 말이지.”
그만큼 자유도가 높은 게임이었다.
수많은 행성과 성단으로 이루어진 방대한 세계관!
거대 은하계가 주 무대인 유니버스는 다양한 개체와 조직, 행성들로 구성되어 있었고, NPC 대화 하나하나까지도 세밀하게 공들인 이름난 걸작이었다.
내가 이 게임에 반평생을 투자한 이유이기도 하다.
촘촘한 설정과 줄거리.
더군다나 싱글 플레이어 게임이라 경쟁 없이 즐길 수 있다는 것도 매력적이었다.
“난이도는 극악이고.”
여기서 난이도란 캐릭터의 생존 확률이다.
즉, 이 캐릭터로 죽지 않고 게임 엔딩을 보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는 의미였다.
“좋아, 너로 정했다.”
화장실에서 방광을 비워낸 난 퀭한 눈을 모니터에 고정했다.
식탁 위에는 컵라면 따위의 인스턴트 용기가 한가득했으나 치워야겠다는 생각 따윈 들지 않았다.
내겐 이런 현실보다 게임 클리어가 더 중요했으니까.
“그 전에 검색부터 해야지.”
이 게임을 완벽하게 즐기기 위해 사전 조사는 필수나 다름없다.
캐릭터와 연계된 히든 NPC부터 히든 클래스.
그 외에도 히든피스나 히든 퀘스트등을 전부 숙지해둘 참이었다.
[해당 검색어와 연관된 게시글을 찾을 수 없습니다.]
허나 떠오르는 건 저딴 문구뿐.
혹시 몰라 구글링까지 시도해봤지만, 별다른 소득은 없었다.
“이거 진짜 히든인 모양이네.”
말 그대로 누구도 갖지 못한 직업.
확신할 수 없지만 적어도 커뮤니티에 공개된 정보는 없었다.
그 말인즉슨.
“공략 영상 올리면 조회수 달달하게 뽑겠어.”
플레이 영상을 잘만 편집하면 몇 달 치 생활비도 벌 수 있을 터였다.
하여 난 [캐릭터 생성] 버튼에 마우스를 얹었다.
그러자 언제봐도 가슴 설레는 문구가 떠올랐다.
[암상인을 생성하셨습니다.]
[캐릭터 스토리라인을 열람하시겠습니까?]
YES.
뭣 모르는 뉴비들이야 귀찮다며 스킵을 하지.
스토리라인은 게임 클리어에 핵심이나 다름 없다.
[로베르트 라우델]
그리고.
이번 캐릭터는 명문가 라우델의 핏줄이었다.
“와, 이게 뜬다고?”
라우델은 유니버스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거대 세력이다.
수억 개의 항성들로 이루어진 성단을 다스릴 뿐 아니라 메인 이벤트인 은하 전쟁의 주역이기도 했으니.
우주의 근원적인 에너지 에테르를 자유자재로 다루는 몇 안 되는 종족이기도 했다.
[캐릭터를 불러옵니다.]
외형은 인간 그 자체다.
하지만 특유의 자주색 눈과 금발 머리, 여기에 완벽한 황금 비율의 신체까지.
현실과는 달리 정말 아름다운 외형이었다.
“그놈 참 잘생겼네.”
그래 봤자 그래픽 덩어리지만.
캐릭터에 자아의탁하는 것이야말로 게이머의 기본 소양 아니겠는가.
이에 난 텍스트를 일독했다.
[로베르트 라우델은 15살의 나이 가문에게 버려진다.]
어째 첫 문장부터 싸하다.
내가 아는 라우델의 통치자 리차드 가주는 수천명의 아내가 있고, 자식 수는 그 이상이다.
그리고 리차드는 자신의 힘, 즉 에테르를 사용하지 못하는 자식을 가차 없이 내치기로 유명했다.
‘얘는 용케도 산 모양이야.’
아니, 오히려 죽는 게 더 나을 정도의 처분이었다.
이놈의 시작점은 죄수호의 최하층이었으니까.
죄수호는 끔찍한 죄를 저지른 범죄자들이 복역하는 이동형 감옥으로 죽기 전까지 탈출은 불가능했다.
“이건 진짜 답이 없네.”
육성으로 말이 튀어나올 정도.
설사 전함을 탈출한다 하여도 그 이후가 문제였다.
도주자가 성단 네트워크에 올라가는 건 기정사실이고, 현상 수배범 신분으로 바운티 헌터들에게 쫒기는 것도 피할 수 없었다.
[캐릭터 퀘스트가 공개됩니다.]
그쯤.
엔딩 조건이 모니터에 새겨졌다.
[라우델 가 몰락 시 Game Clear!]
이에 난 헛웃음을 토해냈다.
가망 없는 최악의 난이도.
이제 마지막으로 확인할 건 캐릭터의 성향뿐이었다.
【냉혈인】
【유연한 사고】
【정신 면역】
【불굴의 의지】
‘그나마 이건 좀 쓸만하네.’
그래도 게임사 놈들이 마지막 양심은 지킨 모양이었다.
“자, 그럼 시작해볼까.”
적당히 혼잣말을 중얼거린 난 두 손을 비볐다.
이 정도면 최소 3주 이상은 게임에 푹 빠질 수 있으리라.
*
띠링-!
난 동태 같은 눈을 깜빡였다.
[GAME CLEAR!]
충혈된 눈동자 너머로 게임을 깼다는 문구가 고스란히 새겨졌다.
“시간이 얼마나 지난 거지······.”
핸드폰의 날짜를 확인한 난 관자놀이를 지그시 눌렀다.
4주.
암상인이라는 캐릭터 엔딩을 보는데 걸린 시간이다.
그조차 세계관과 NPC, 이벤트등을 전부 꿰차고 있었기에 망정이지 아니었다면 더 오랜 시간이 걸렸을지도 모른다.
“진짜 지랄 맞은 난이도라니까.”
난 머리를 북북 긁었다.
게임 내 숨겨둔 히든 NPC와 퀘스트를 찾느라 얼마나 애를 먹었던지.
그렇게 하루 2-3시간씩 자면서 게임에 매달렸고, 그 과정에서 캐릭터가 사망한 횟수만 1000번이 넘어갔다.
[게임 내 최고 난이도를 클리어하셨습니다.]
[보상으로 100 CP가 지급됩니다.]
대신 캐릭터 포인트를 얻었다.
100 CP면 어떤 NPC로도 플레이가 가능할 터.
아이템베이에 올려 현금화를 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었다.
“일단 한숨 자자.”
난 한 모금 남은 레스비를 탈탈 털어내며 의자 등받이에서 몸을 뗐다.
그리고는 전원 버튼을 향해 손가락을 움직였다.
그때 떠오르는 시스템 창.
[플레이블 캐릭터를 전부 클리어하셨습니다.]
[유니버스의 창조주가 당신에게 축복을 내립니다.]
[캐릭터 빙의를 시작합니다.]
난 미간을 좁히며 상체를 앞으로 기울였다.
“뭐야 이건?”
[동기율 : 12%]
이런 문구를 보고 있자니 더더욱 혼란에 빠졌다.
그렇게 시간이 10초쯤 흘렀을 때.
[동기율 : 100%]
[유니버스 세계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모니터에서 일순 엄청난 빛이 뿜어져 나왔다.
단순한 LED 불빛이 아닌, 커튼이 처진 방안을 환하게 비춰줄 만큼 강렬한 불빛이었다.
“악···!”
눈살을 찌푸리던 내 시야가 흐려졌다.
그리고.
“얼른 이동해라 106번.”
정신을 차린 내 앞에 근육질 사내가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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