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숨 돌릴 틈 없이 골목을 뛴다
.
집과 집 사이의 골목은 워낙 비좁아 달리는 중에도 몇 번이고 어깨를 벽에 부딪힌다
.
달은 구름에 가려지고 길을 밝히는 거라곤 간간히 보이는 나트륨 등 뿐
,
여러 개의 갈림길을 지나고서야 잠시 멈추어 숨을 돌린다
.
좀처럼 숨이 골라지질 않는다
.
숨이 모자란 고통이 단순히 폐에서만 느껴지지 않는다
.
기묘한 감각이 꿈을 의심하게 한다
.
여길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이 더욱 강하게 든다
.
-
저벅저벅
-
등이 비추지 않는 어둠 속에서 발소리가 들린다
.
서두르는 기색이라고는 조금도 없이 그저 규칙적으로 발을 옮긴다
.
조금이라도 달음질을 멈추면 으레 기다렸다는 듯 저 발소리가 들려온다
.
누군지도 모른다
.
혹 사람이 아닐지도 모른다
.
그저 날 쫓고 있음을 알려주듯 어둠속에서 발소리만 들린다
.
나는 숨을 채 고르지 못하고 다시 달린다
.
얼마나 이 짓을 반복했을까 방향 감각이 없다
.
갈림길을 지나칠 때마다 보이던 전봇대를 계속 마주치는 느낌이 든다
.
전봇대의 생김새란 비슷한 것이 당연하지만 익숙한 느낌이 든다
.
-
저벅저벅
-
다시 달린다
.
벽에 어깨를 부딪히고 익숙한 전봇대를 지나친다
.
덕지덕지 발라진 시멘트벽에 등을 기대고 숨을 고른다
.
-
저벅저벅
-
다시 달린다
.
-
저벅저벅
-
얼마나 반복했을까 가늠조차 가지 않는다
.
어깨는 계속 들썩이고 않고 몸은 무디다
.
나는 더 달릴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
아까는 보이지 않던 양철문이 보인다
.
건물의 이상한 곳에 박혀있다
.
나는 그 안에 숨으려 한다
.
-
끼이이키익
-
빌어먹을 양철문
,
조심히 당겨봐도 소용이 없다
.
-
저벅저벅
-
나는 거칠게 문을 열고는 안에서 문을 잠갔다
.
환풍구 팬 사이로 비추는 주황 불빛에 방안 풍경이 간간히 보인다
.
화장실이다
.
더럽고 깨진 거울 수도꼭지라곤 없는 세면대에 더러운 구정물이 가득하다
.
그 옆에는 연두색 판으로 두 칸이 나뉘어져 있다
.
문을 열자 안에는 뚜껑이 닫힌 변기가 있다
.
갑자기 악취가 난다는 생각이 든다
.
-
키익
-
문을 열려고 한다
.
나는 다급히 손에 쥘만한 것을 찾는다
.
없다
.
나는 문으로 달려가 열리는 것을 막았다
.
어찌된 영문인지 자물쇠 손잡이가 돌아가고 있다
.
나는 두 손으로 반대로 돌려보지만 천천히 무겁게 자물쇠는 열린다
.
도망쳐야 한다
.
아까 본 환풍구에 눈이 간다
.
밖으로 나갈 수 있다
.
손으로 환풍구 팬을 뜯어낸다
.
손을 걸치고 몸을 우겨넣는다
.
어깨를 빼고 머리를 들이밀고 두 손으로 벽을 집은 채 허리를 당긴다
.
-
키이익
-
양철문이 열렸다
.
다급히 발을 놀린다
.
-저벅저벅-
순간 허리 아래가 뜯겨나가는 느낌이 든다
.
.
.
.
"하아..하아...흐읍.."
얕은 숨을 몇번 쉬다 깊게 숨을 마신다. 언제였는지는 애매하지만 나이가 들기 시작한 후로는 꾸지 않던 꿈이다
.
같은 장소 같은 흐름 결말도 같다
. 쉬지 않고
도망치다 끝에는 환풍구에 끼어 허리가 뜯겨나가는 꿈
,
어렸을 적 셀 수 없을 정도로 꿔서 정신적으로 문제가 생길 정도였다
.
덕분에 불면증도 겪었었다
.
부모님에 얘기해 치료도 받아봤지만 차도 없던 상태로 계속 시달리다 갑자기 꾸지 않게 되었다
. 이제와서 다시 꾼다는게 의문이다. 갑자기 허리 아래로 저릿한 기분이 든다. 내 더욱이 이 꿈을 싫어했던 건 이 느낌 때문이었다. 꿈을 꾸고 나면 진짜 달린 것 마냥 다리가 저릿저릿하다.
민소매 티를 벗고 흐르는 땀을 대충 흝었다. 티에 땀이 흥건하다. 찌뿌둥한 몸을 끌고 샤워를 한다. 차가운 물을 맞고나서야 꿈에서 벗어난다. 하루 시작이 영 좋지 않다. 왼손을 들어 시각을 확인하고 아침을 시리얼로 대충 때운다. 09:14 평소보다 일찍 나왔다. 수업이 10:30 에 시작이니 여유가 있다. 지하철 대신 자전거를 타기로 했다. 이어폰을 꽂고 얼마나 달렸을까 다리가 약간 뻐근해질 즈음 학교에 도착했다. 자전거를 묶고는 사물함으로 발걸음을 돌린다. 이마에 난 땀을 옷을 들어 딲고는 이어폰을 뺐다. 학교 거리가 한산하다 못해 기분 나쁜 정적이 귀를 때린다. 다시 이어폰을 꽂으려는 찰나
-저벅저벅-
"...?"
발소리를 들었다. 당황스럽다. 발을 멈추고 주위를 둘러봤다.
-저벅저벅-
발소리가 다시 들렸다. 나는 머리를 세차게 흔들었다. 주위를 둘러봐도 아무것도 없다. 아무도 없다. 발소리가 들릴 리가 없다.
'아무도 없다?'
갑자기 소름이 끼친다. 나는 반사적으로 달리기 시작한다. 금세 학교 밖으로 나왔다. 달리면서 아무도 마주치지 못했다. 학교 밖에도 사람이 없다. 꿈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진짜같다. 멍하니 주위를 둘러본다.
-저벅저벅-
"씨발!"
도망쳐야 한다. 도망쳐야 한다는 생각이 머리를 가득 채운다. 달리기로는 금방 잡히고 만다. 자전거에 눈이 간다. 자물쇠를 우악스럽게 풀고는 바닥에 집어쳤다. 페달을 이를 악물고 밟았다. 본능적으로 집을 향한다. 금세 다리가 뻐근해진다. 분명 이쯤이면 집에 도착하고도 남을 시간인데도 집은 커녕 학교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학교를 맴돈다. 이상한 상황인데도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꿈인걸 알면서도 자각을 하지 못한다. 도망쳐야 한다는 생각에 페달만 부서지도록 밟는다.
얼마나 반복했을까 가늠조차 가지 않는다
.
어깨는 계속 들썩이고 않고 다리는 무디다
.
나는 더 달릴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 손에 땀이 흥건하다. 방향을 틀려는 순간 땀에 손이 미끄러졌다. 턱을 핸들에 부딪히고는 바닥을 뒹굴었다. 바닥을 뒹굴며 머리를 몇번이고 부딫힌다. 정신이 없다. 방향감각이 뒤틀려 붕 뜬 기분이다.
-저벅저벅-
다시 발소리가 들린다.
-저벅저벅-
머리 아래로 뜯겨나가는 기분이 든다. 아니 머리가 뜯겨나가는 건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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