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봉 전 기본적인 플롯과 시나리오조차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악평을 남기시는 분들이 엄청 많기에 구글번역기 자막이 도는 바람에 이해를 못했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만, 개봉 후에도 그런 분들이 속출하는 걸 보면 영화의 전개 방식이 약간
불친절하고 복잡하긴 했나봅니다.
혹시 이곳에도 "미래를 보는 초능력을 가진 외계인이 지구에 왔다가 뭔가 하지도 않고 가버리고, 주인공은 뜬금없이 초능력을 얻어 중국인을 설득해 지구를 구하는 내용"이라고 생각하시는 분이 계시다면
천천히 읽어보시고 다시 한번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최대한 간단하고 플롯 이해에 중요한 사실만 써보았습니다.
1. 가장 먼저, 외계인들이 인간보다 본질적으로 고차원적인 존재라서 미래를 보는 것이 아닙니다. 기술적으로나 문명적으로 더 진보한 존재라고 볼 수는 있겠죠.
주인공도 특이한 능력이 있어서 외계인들처럼 미래를 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미래를 알 수 있는 걸까요?
2. 작중에 이런 말이 나오죠. "사용하는 언어가 사고의 방식을 결정한다"
외계인들이 미래를 알 수 있는 것은, 그들의 언어가 시간을 선형적인게 아니라 동시적인 것으로 느끼고 사고할 수 있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우리 인간들처럼 선형적인 시간을 느끼며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과거-현재-미래를 동시에 살아가고 있는 겁니다. 와치맨의 닥터 맨해튼을 생각하시면 비슷할 겁니다.
3. 주인공이 미래를 알 수 있게 된 것도 그들의 언어를 배웠기
때문입니다. 외계인들과의 소통이 주인공의 사고방식을 바꾼 것이죠.
4. 그렇기 때문에 지구에 온 목적을 묻자 외계인들은 말합니다. "무기(도구)"를 주러 왔다고, 또 "선물"을 주러 왔다고. 미래를 알 수 있는 능력은 유용한 "도구이자 무기"겠지요. 그리고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그들의 언어가 외계인들이 인류에게 주려는 "선물"입니다. 주인공은 그 선물을 잘 이용하여 전쟁을 막은 것이지요.
5. 그 선물을 주려는 목적은 말씀하신 것처럼, 수천년 후의 미래에 자기네 종족을 돕게 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그들의 언어를 배움으로써 자기네들과 같은 수준에 이르게 된 미래의 인류로부터의 도움을 받기 위한 것이죠.
---------------------------------------------------------------------------------------------------
아마 서술과 내용전개에 트릭이 있었기 때문에 많은 분들이 헷갈려하신 것으로 생각됩니다.
한 가지만 알고 계시면 그 부분이 헷갈릴 일은 없을 겁니다.
"영화의 첫장면이 나레이터는 마지막 장면의 나레이터와 같다."
무슨 말이냐 하면, 이 영화는 사건 과정을 순차적으로 구성하는 게 아니고, 외계인들과의 교류를 통해 그들과 같은 방식으로 사고하게 된 주인공이 자신의 이야기를 서술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첫 회상씬과 주인공의 기운없는 듯한 태도를 보면, 처음엔 누구라도 "주인공이 자식을 잃은 상황이구나"라고 생각할겁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딸과의 추억이 주인공에게 떠오르는 것을 보고 "쉽게 이겨내지 못하고 있구나"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런데 영화는 계속해서 힌트를 주고 있습니다. 처음과 끝이 없이 원형으로 쓰이는 외계인들의 언어, 미래를 알고 있다는 듯한 그들의 언어사용방식, 언어가 사고를 결정한다는 대사, 딸의 아버지가 과학자라는 사실.... 등등 점점 퍼즐 조각이 맞추어집니다.
마지막으로 딸을 떠올리며 "이 아이는 대체 누구지?"라고 생각하는 주인공... 여기까지 오면 "아, 모든 회상씬은 회상이 아니었고, 아직 태어나지 않은 딸과의 미래를 본 것이구나"라고 깨달을 수밖에 없죠. 이게 이 영화의 반전요소입니다. 원작을 읽으셨거나 눈치가 빠르신 분들은 이미 훨씬 전에 알고 계셨겠지요.
영화의 첫 씬인 회상씬은
마지막 장면에서
이안과의 사랑을 확인하는 동안에 떠올린 것으로, 이미 미래를 볼 수 있게 된 주인공이 그 사랑의 결말을 알고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림으로 정리해보았습니다. 첫 씬은 마지막 씬 시점의 주인공이 상상하는 것입니다.
어린 나이에 딸이 죽는다는 비극적인 미래가 올 것임을 알고 있으면서도 왜 주인공이 다른 선택을 하지 않았는가? 하는 점은 영화를 보고 곱
씹어볼 만한 재미있는 주제입니다.
----------------------------------------------------------------------------------------------------
결국 영화에서 전하고자 했던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소통의 중요성"이겠지요. SF적인 요소는 부차적인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우리는 같은 언어를 사용하면서도 각자의 의견을 완벽히 전달할 수는 없습니다. 하물며 서로 다른 언어와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과는 어떻겠습니까? 인간과 같은 방식으로 사고하는 지성 생명체라고 생각되었던 헵타포드들이 실제로는 "시간"이라는 개념에서 인간과 완전히 다른 지각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그것을 말해줍니다.
또, 외계인에 대한 공격을 감행하려하는 중국의 샹 장군을 보고, 미국의 작전기지에서 이런 말을 하죠.
"망치가 주어지면 못을 때릴 수밖에 없다" 자신이 받아들인 상황을 바탕으로 사고할 수밖에 없다는 말입니다.
외계인들이 지구에 온 목적을 침략 혹은 적국에 대한 원조라고 간주해버린 샹 장군은 외계 우주선을 공격하려고 합니다. 그것을 멈춘 것은 바로 그의 죽은 아내의 마지막 한 마디 였습니다.
그런 작은 것 때문에 이렇게 큰 일이 바뀔 수 있냐? 고 반문하시는 분이 계실겁니다. 하지만 영화가 관객에게 전달하려고 했던 가장 중요한 메시지가 바로 그것입니다. "서로에 대한 몰이해 때문에 전쟁이 일어날 수도 있고, 말 한마디로 그것을 막을 수도 있다". 바로 소통의 중요성이죠.
=====================================================================================================
이렇게 정리해서 서술해 보았습니다. 생각나는 대로 자세히 쓰려다 보니 굉장히 길어졌네요.
글을 다 읽으신 분들은 아마 내용 이해는 되셔도 영화를 좋게 보신 분들이 느꼈을 감동을 느끼지는 못하셨을 겁니다.
영화를 보며 동시에 퍼즐을 맞추어가고, 결말을 보고 하나의 완전한 이야기로서 잔잔한 감동을 느끼게 되는 그런 재미는 실시간으로만 느낄 수 있지요.
개인적으로는 원작소설도 재밌게 읽었고, 같은 소재를 가지고 또 다른 메시지도 전하고 있다는 점에서 간만에 나온 SF 수작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조금은 명쾌하지 않은 전개 구조에 많은 분들이 영화를 잘 받아들이지 못한 점은 아쉬운 부분입니다.
영화 시나리오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로 졸음유발 영화라거나, 아무 내용 없다거나 하며 단정짓는 분들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제일 먼저 듭니다. 좀 더 많은 작품을 보고 경험을 쌓고 영화를 보는 눈을 기르신 상태에서 보셨다면 자기 얼굴에 침 뱉는 그런 말은 못할텐데... 하는 생각입니다. 자신이 아는 게 전부가 아니라는 점을 깨닫고 좀 더 열린 마음을 가지게 되셨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
ps. 설명에 불충분한 부분이 있으시면 댓글로 더 자세히 말씀드리겠습니다. 건전한 의견 교환도 환영입니다.
ps2. 영화 재밌게 보신 분은 원작 소설 <네 인생의 이야기>도 꼭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자유)
방시혁이랑 민희진은 그냥 둘이 상극인듯.
(8)
영화 월간 추천 
